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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높은 시청률로 막을 내린 모범택시 2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법으로 처벌할 수 없는 가해자들에게 사적복수를 대신해 주는 모범택시 이야기에 시청자들이 열광하여 곧 시즌 3도 나온다고 한 기대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범택시 2에는 여러 빌런이 나왔지만 그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빌런인 '온하준'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1. 온하준 정체
모범택시 2의 최강 빌런이었던 온하준의 정체에 대해서 매우 궁금하셨던 분이 많으셨을것 같습니다. 모범택시 시즌 2에서 초반 무지개 운수에 택시기사로 취직하며 동태를 살피던 온하준의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꺼림칙했는데 마지막 화에서 그의 정체가 드러났습니다.
온하준의 이야기는 1975년부터 1987년까지 실제로 운영되었던 <<형제 보육원>>사건을 모티브로 전개되었습니다.
형제 보육원은 부산에 있던 보육원이었는데 많은 어린아이들을 납치하여 감금하고 끝내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보육원이었습니다.
실제로 그 당시 형제 보육원에는 부모가 버린 아이가 아닌 길잃은 어린 아이나 집 앞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던 어린아이들이 형제보육원으로 납치당했던 사례가 많았다고 합니다. 모범택시 2의 온하준 역시 이 형제 보육원의 피해자였습니다.
9살이었던 김단우 (온하준의 실제이름)는 어느날 기억을 모두 잃고 형제보육원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자신의 이름도 부모님의 얼굴도 어찌 된 영문인지 기억을 못 했던 어린 단우는 아무것도 기억을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형제 보육원의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단우는 자신을 괴롭히던 온하준이라는 아이를 밀쳐서 죽게 만듭니다.
그 당시 형제보육원의 책임자였던 교구장은 이 사건을 경찰과 협력하여 무마시키고, 어린 단우에게 온하준이라는 이름을 붙여주며 싸움에서는 언제나 이겨야 한다며 어린 단우를 세뇌시키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어린 단우는 구교장에 의해 세뇌당하며 싸이코패스로 길러집니다.
2.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한 온하준
온하준은 자신의 부모가 형제보육원에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김단우의 아버지는 집 앞 놀이터에서 놀고있던 자신의 아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자 자신의 생업을 모두 내려놓고 아들을 찾아다녔습니다.
실제로 무지개 운수의 대표인 장성철이 온하준에게 건넨 서류를 보면 김단우의 아버지가 자신의 아들을 얼마나 오랜세월 찾아 헤맸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9살 때 실종된 아이를 찾으려 해마다 전단지를 다시 바꿔가며 아이가 19살이 되던 해까지 자신의 모든 인생을 포기하고 아들을 계속해서 찾아다녔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자신의 아들을 형제보육원에서 봤다는 제보를 받고 형제복지원으로 찾아갔던 김단우의 아버지는 아들을 만나게 해준다는 구교장의 말을 듣고 약속장소에 나갔다가 구교장의 명을 받은 온하준에 의해 살해당하게 됩니다. 아들을 기다리던 아버지를 건물 위에서 밀쳐서 살해한 온하준은 그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 인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장성철이 건넨 물건들에 자신의 어릴적 찍은 가족사진을 보고 자신이 죽인 남자가 자신의 생부였음을 알게 되고 오열하게 됩니다.
3. 온하준의 최후
모든 진실을 알게된 온하준은 김도기에서 의뢰를 하게 되고 김도기와 마지막 결투를 벌입니다. 김도기와의 전투에서 진 온하준을 죽이려 구교장이 다가왔을 때 온하준은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린 구교장을 건물 위에서 떨어뜨리며 자신도 같이 떨어져 죽음을 맞이합니다.
구교장은 어릴적부터 자신이 키워온 온하준의 손에 죽음을 맞게 되자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고, 온하준은 한때나마 행복한 순간을 보내던 무지개 운수 식구들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죽음을 맞습니다.
4. 형제 복지원 사건
우리나라 역사상 최악의 인권 유린사건 중 하나였던 형제보육원 사건은 12년 동안 513명의 무고한 아이들이 사망했던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관련자들이 크게 처벌받지 않았고, 크게 이슈화되지 않았던 사건입니다.
실제로 형제복지원은 1975년부터 1987년까지 운영되었으며, 그 당시 최대 규모의 부랑자 수용시설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부모잃은 어린아이들이나 노숙자들을 부랑자 취급하며 형제복지원으로 이송했던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수용자들은 말도 안 되는 학대와 심지어는 죽음을 맞게 되는 일이 많았습니다.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바로 1986년에 서울 올림픽개최를 앞두고 장애인들이나 부랑자들을 단속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전두환 정권이 이런 인권유린을 묵인했기 때문입니다. 수용원생들은 70%가 부랑자가 아닌 지나가던 일반인이었으나 부산경찰에 의해서 납치당하여 형제 복지원으로 보내졌으며 그중 일부는 탈출을 했지만 공권력에 의해 다시 잡혀 들어가기 일쑤였습니다.
결국 형제복지원을 운영하던 박인근은 말도 안되게도 당시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에게 부랑자들을 잘 관리한다는 명분하에 국민훈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추후 사법처리를 받게 되었을 때도 박인근은 크게 처벌받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전두환 정부에서 이 사건을 빨리 덮어버리고 싶어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전두환 정부에서 부랑자들을 관리한다는 명목하에 일반인들에게 강제수용을 지시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박인근은 솜방망이 처벌만을 받았고, 보육원생들을 폭행하고 살인하고 시신유기 및 암매장을 했다는 것으로는 처벌받지 않았습니다.